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판단에 대해...2003-03-22 16: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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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픔을 주는 행위인지, 그리고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지않은 행위인지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고 있다고 느낄때, 나타나는 반응은 크게 2 가지로 나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에 대한 실망, 원망, 분노, 등등 감정적 변화입니다. 이러한 실망, 원망, 분노등 감정적 변화를 통해 우리가 받는 것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그 마음의 상처는 특히, 자신이 믿었던 사람에게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판단을 받을때 그 상처는 더욱 깊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오해로 인한 것 이거나, 추측에 의한 것일때는 더욱 더 분통이 터집니다. 둘째는 자신도 이제 그사람을 판단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판단을 당한 사람은 이제 자신도 똑같은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1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마 7:2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 당할 것이다. 마 7:3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결국 이러한 판단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에게 스스로 돌아 볼 것과 자기를 먼저 살필 것을 예수님은 충고하십니다. 이러한 판단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 되는지 저는 한번 곰곰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직관력(감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라 할까요. 주님이 주신 놀라운 직관력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사람이 힘들어 하고 있는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어디가 아픈건지 등등의 상대방의 감정 상태는 구태여 말은 안해도 어느정도 추측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직관력은 더 나아가 눈에 보이는 말과 행동을 통해 나를 미워하고 있는건지, 나를 못마땅 하게 여기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건지, 등등 까지 추측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직관력이 너무 지나쳐, 단지 눈에 보이는 것들 만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나, 믿음, 인격 등등 사람 자체를 추측 하기 시작 할 때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추측뒤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판단입니다. 특히 지나친 Guess는 잘못된 판단으로 발전되기 쉽고 이 판단으로 남을 정죄 하는 단계가 될때는 이미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셨고 아무도 판단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요 8:15 너희는 사람의 표준대로 판단하지만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도 있는 모습 그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대로, 못나면 못난 모습대로, 뛰어나면 뛰어난 모습대로 , 추측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정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사랑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경은 사람은 판단할 권리가 없음을 말씀합니다. 롬 14:4 누가 감히 남의 종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서든 넘어지든 그의 주인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세우실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서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재림 전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 것 또한 말씀하십니다. 고전 4:5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주님이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고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남을 판단하며 같은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롬 2:1 여러분은 남을 판단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2:2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롬 2:3 자기도 같은 일을 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간에도 판단하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 4:11-12). 성경은 믿음이 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4:1 믿음이 약한 사람을 따뜻이 맞아 주고 그의 의견을 함부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롬 14:2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믿음을 가졌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롬 14:3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먹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가려서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크리스챤 됨은 우리의 알고 있는 말씀 지식의 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지 말씀의 지식 쌓기만 추구하고 단순히 지식만 쌓여 간다면 세상의 썩을것 붙드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는 지식의 풍부에서 오는 교만을 늘 경계 해야 하고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도 사랑하셨습니다. 죄인임을 알고도 구원해 주셨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있는 모습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서로 사랑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도 하나님의 관계만큼 중요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또한 사람들간의 관계회복도 중요함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5: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해하라.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려라. 상처는 한번에 쉽게 받으나 그 회복은 한번에 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해 본다면 사람에게 받은 깊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선 10배 100배 이상의 사랑과 노력이 필요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주님안에 있기에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할 수 있고 주님의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는 판단으로 상처주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는 판단으로 상처주는 성도님들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김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