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간증문2002-03-06 12:53:01
Writer
저는 참으로 오랫동안 불신자 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불신자가 아닌 노골적으로 교회를 싫어 하며 지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2001년 4월 1일 교회를 처음 나왔고 그리고 교회 나온 지 둘째 주일부터 새가족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셋째 주에 침례를 받았고, 4째주에 간증 하고 성가대 활동도 시작 하였고 새신자 교육, 영적 성장의 기본 진리, 예수님짜리의 제자훈련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고 지금은 행복한 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지 아직 1년이 채 안 되지만 실로 주님의 역사하심은 저에게 참으로 놀라 왔습니다. 교회하고 평생 담쌓고 지낼 줄 알았던 내가 기적 같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은혜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지난 시절을 잠깐 돌이켜 보면, 제가 주님을 멀리떠나 살 때는 이런 생각들을 참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짜피 언젠가 죽을 인생이지만, 이왕 사는것 염세주의자 처럼 살지말고 뭔가 나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항상 이러한 생각들을 내 스스로 많이 하다보니,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다와 보였고 그러한 삶 자체가 보람된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록 자신의 꿈을 설사 이루지 못할 지라도 그렇게 살아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의미있고 보람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하지만 그것은 내 스스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나의철학에 바탕을 둔 것 이었고, 더 큰 진리를 외면한 오로지 나의 짧은 생각을 통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삶의 진리고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하는 일 마다 최선을 다했고 나름대로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를 붙들 수 있는 좌우명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 나에게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모든 문제는 반드시 풀린다." 입니다. 그때는 이 좌우명 하나 붙들고 참 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살아 왔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내가 긍정적으로 그 문제를 보고 나의 감정에 동요됨 없이 객관적으로 그 문제를 보며 해결할려고 할때 전 늘 그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의 긍적적인 자세와 적극적 자세 덕분에 저는 지금껏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려움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고, 또한 자신에게 조차 잘못한 것이라 스스로 판단될때는 냉혹하게 꾸짖었고, 내가 약하다고 느껴질 때는 스스로 채찍질 하며 지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더 강하게 나 자신을 채찍질하였고 오로지 나 자신의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자신의 긍정적인 사고만 믿고 살아 왔었습니다. 믿음! 비록 나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믿음이었지만,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나가기 3년 전부터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큰 어려움이 하나 둘씩 닥쳐왔습니다. RA나 TA를 할 기회도 없어 경제적인 어려움에 늘 시달려야 했고 거기에다 Ph.D. Qualifying 시험에서 두번의 낙방은 나를 한없이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신히 petition letter를 쓰고 한번 더 얻은 기회 조차 떨어 졌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나의 유학생활이 끝이 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과 깊은 절망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야 말로 지옥 같은 날들 이었습니다. 지금껏 쌓은 탑이 무너지며 원점으로 아니 그 보다 더 악한 상황으로 되 돌아 간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모든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 갔습니다. 학교를 옮길려고 해 보니 TOEFL과 GRE도 이미 기간이 지나버려 다시 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GRE책을 펼쳤지만 도저히 글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UT내에서 과를 옮겨 볼려고 다른 과 교수님들과 접촉을 해 보았지만 Qualifying 시험에 떨어진 그리고 자신감 조차 잃어가고 있는 나에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습니다. 점점 벗어나기보다 더욱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지기 시작하고 이렇게 유학을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이제 어떻게 가장으로 내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땐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과 아내, 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못난 내 자신이 더욱 미웠습니다. 이제 나 스스로도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이르고 보니 벗어나기 위한 노력보단 이제는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땐 정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서글퍼 졌습니다. 그러한 거듭되는 좌절과 고통으로, 내 몸과 마음은 힘들어 지칠대로 지쳐가고, 지금껏 한번도 느끼지 못한 내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단계가 되니, 인간이 참으로 나약한 존재임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강하다고 생각한 내 자신을 믿은것에 한계를 느끼고 나니 너무나 무기력 하고 무능한 내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걱정도 순간 들었습니다. 내가 젊어서도 결국 이런 한계를 느끼고 힘들어 하는데 이다음에 나이 들고 육체마저 병들어 힘들때는 그 감당을 어떻게 할까? 한마디로 막막 하였습니다. 지금껏 내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영원히 나를 받쳐줄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걸 내 스스로 알았을 때, 나 자신을 맡겨야 할 곳,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할 더 큰 믿음이 있어야겠다는 강한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큰 믿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나니, 그제야,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내가 믿음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 입니다. 그런 큰 믿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갈망하고 있을 때 평소에는 별로 좋게 보지 않았던 교회 다니시는 분들의 표정이 저에겐 그렇게 밝아 보일 수가 없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이 너무나 부러워 졌습니다. 그 전만해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특히 뜨거운 성령이 마음 속 깊이 충만 되어 다니시는 분들을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야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었으며 제가 싫어했던 그런 분들이 오히려, 나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나도 저렇게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그래서 나도 저들처럼 다시 밝아 질 수 있다면... 희망찬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이러한 소망들로 내 마음이 채워지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저와 저희 가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메일 박스에 "Jesus 비디오"가 왔더군요, 예전 같으면, 누가 이런 것을 보냈지, 이런 것 보낼 돈 있으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donation이나 하지,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 쯧쯧…  하면서 아마 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넣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왠지 버리지 못하고 "Jesus 비디오"를 들고 집으로 왔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그 밖에도 너무나 많은 주님의 이끌림이 저희 가정에 있었습니다. 생전 얼굴 한번 보지 않은 단순히 장거리 전화 서비스 때문에 통화를 몇 번한 적이 있는 어느 자매님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에 저보다 더 교회를 싫어 했던 저희 집사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고, 그러던 중 새로운 구역 한 자매님의 인도로 용기를 가지고 교회에 첫 발을 내 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너무나 따뜻이 환영해 주었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 새로운 구역의 식구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눈물로 같이 통성 기도해 주고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날의 회개를 통해 정말 내가 엄청난 죄인 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저의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 이자 믿음의 동역자들 입니다. 나를 영원히 의탁할 수 있는 곳, 내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줄 무언가를 절실히 찾고 있던 나에게 주님의 만남은 한마디로 사막에서 죽어갈때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았습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나에게 참 기쁨을 알게 해 주시고 참 평안을 알게 해주신 주님을 찾은 나는 그동안 세상적인 눈으로 의심하고 부정하고 기독교에 대한 배타적인 나의 마음의 불신을 한순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실 제가 기독교에 그렇게 배타적인 이유는 지금은 천국에 가 계시는 저희 형님 때문 이었습니다. 너무나 자신의 것에는 욕심이 없고 세상것은 관심도 없고 오로지 하나님밖에 모르며 하나님만을 위해 헌신적인 형의 모습이 그땐 너무나 싫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늘 기도 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실천할려고 노력하는 그런 분 이었습니다. 전 그런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답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형을 일찍 데려 가시는 하나님 또한 너무나 원망 스러윘습니다. 지금에 와서 회개하니 그때는 몰랐지만 형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겠고 오히려 내가 형을 더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에 참으로 많은 눈물로 회개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저희 형을 제물 삼아 나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참뜻을 이제는 조금 알것 같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거듭태어난 저는 이것이 참 믿음이구나, 이것이 참 행복이구나, 이것이 참 평안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루하루가 다시 너무나 기뻐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절로 "찬송하리로다"가 나올 지경 이었습니다. 잠시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가 다시 그 부모를 찾았을 때와 같은 그런 기쁨과 감격으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에서도 이제 밝은 모습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약해져 있던 나는 다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한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저를 받아 주셨습니다. 현재 저의 지도교수님 이십니다. 학교에 오면 전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온전히 주께 바치니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오늘 하루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 후 하는 공부는 참으로 재미있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의무감에 의무적으로 참고 해온 수동적인 공부였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저희 지도 교수님께서 당신이 아끼시는 학생중의 하나라고 남들 앞에서 서슴치 않고 말씀하실 수 있게 된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정에도 다시 웃음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평안과 행복으로 가득찼습니다. 가족들과 식사때 마다 드리는 기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잠자기 전 드리는 짧은 가정예배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못하는 기도지만 새벽기도에도 몇날 동안 다녔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 은혜 감사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한없이 솟아져 나오는 그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에 대한 저의 사랑과 교제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져 오게 해 주시고 제 마음에 늘 성령 충만케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체험없이 지난날의 체험으로 간증하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고 어제 보다 오늘 더 성령 충만하고 오늘 보다 내일 눈물이 더 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기도하며 간증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