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한국교회의 지금, 그리고 부흥을 위한 개혁 - 72012-07-12 14:44:19
Writer
한국교회의 지금, 그리고 부흥을 위한 개혁 - 7  
 
인간 찬양을 추구하는 \'목적이 이끄는 삶\'
 
 

북한사랑 PN4N 2011년 2월호 

글: 리차드 베넷(Richard Bennett) 
한글번역 및 서론: 이스데반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이와 같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날 때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으로의 접근이 용이하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의 자신만만함과 우리 자신에 대한 허망한 확신은 가장 나쁜 두 개의 해충이다. 하나님께서 이 두 해충을 파멸시킬 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첫 관문이 사실상 우리에게 열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해충이 박멸될 때 우리는 이 땅에 집착하고 있던 우리의 눈길을 하늘을 향하여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들 자신을 의존하며 우리들 자신 안에 안주하고 있던 우리는 주님을 열망한다." (칼뱅의 <신앙교육서>,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9, 22쪽) 


서론 

리챠드 베넷은 가톨릭 사제로 일하다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복음을 발견한 후 사제직을 버리고 복음 증거자로서 가톨릭과 현대 이교들의 오류를 깨닫게 하는 자로서 쓰임 받고 있다. 그의 사역은 웹 페이지를 통해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의 배경과 역사와 현대 전략 등에 대해서 일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다소간 알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가톨릭에 대해서 역사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탐구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다수의 개신교인들도 원래의 성경의 복음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일을 중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있는 거짓 복음에 사실상 매몰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분별에 실패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성경의 복음을 탐구하지 않음에 기인하고, 또한 부분적으로는 아담과 하와를 쉽게 넘어뜨렸던 사탄의 교묘함에 대해서 아직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탄의 술책은 성경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축소하고 핵심 요소들을 붕괴시킨 후, 사람들을 유인하여 세상의 기쁨과 만족을 충분히 강조하고 인간의 마음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고 자긍심을 고취시킨 후, 사람들을 유사 중생 상태로 최대한 많이 이끌어 자신의 왕국을 넘치도록 채우는 것이다. 이것은 하와를 꾈 때의 그 수법 그대로이다. 1년이 넘도록 \'옛길 찾기\'를 통해서 얼마간 복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참복음으로 돌이키는 일은 성령님의 일하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도록 리챠드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성경의 복음에 믿음의 기초를 세울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리챠드는 이 글의 제목을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표현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찬양\'(The Adulation of Man in The Purpose Driven Life)이라고 함으로써, 이 책의 저자 릭 워렌과 이 책의 내용에 동조하는 개인들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한때 잉글랜드의 영감(靈感)된 설교자 스펄전이 설교하였던 런던 메트로폴리탄 터바너클에서, 리챠드는 2009년에 위의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하였고 아래의 원고는 그 메시지를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의 메시지 비디오는 영문 제목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교회 안으로는 온갖 속이는 것들로 가득하고, 교회 밖으로는 온갖 이단들이 팽배해져 가고 있어서 성경의 진리를 찾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욱 어려워졌다. 사실상 교회의 정기 출석자 중에서 절반 정도는 아마도 옛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한때 들었더라도 이제 거의 잊어버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나머지 절반 중의 절반은 옛 복음으로 시작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밀려들어온 유사 복음들에 의해서 매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아마도 결과적으로 남은 일부의 사람들만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 있거나, 매몰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싸우는 사람들로 남아 있을 법하다. 문둥병자를 진단하고 회복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꼼꼼한 지침을 주셨던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오늘날 설교자들의 대부분은 회중들이 자신의 구원을 꼼꼼하게 점검하도록 어떠한 지침을 주는 경우가 별로 없을 것이다. 예전의 설교자들은 대부분의 설교를 복음을 전하면서 교인들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도록 할애하였던 것에 비하면 달라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옛 설교자들은 사탄이 빈틈을 타고 들어오는 일에 천재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잘 알았고 따라서 자신의 양떼들의 약한 틈을 진단하고 또 진단했다. 설교를 통해 영적 진단과 처방에 쉬지 않는 진정한 양치기들이 오늘날에도 과연 있는가? 옛 설교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조사하고 연구하고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본문 해설과 추출된 교리 강해와 영적 상태에 맞는 적용 지침을 꼼꼼하게 줌으로써, 영혼들을 풍성하게 먹였던 옛 목자들의 양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양들의 약한 틈은 예방하지도 않으며 신경안정제와 마약 성분으로만 처방하여 일시적인 행복만 반복해서 주입하고 그리하여 건강했던 양들마저도 타락의 길로 유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리챠드가 글의 제목에서 얘기했던 그 단어의 비유가 과연 적합한지 그의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배경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삶>은 "베스트셀러의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1)저자 자신의 말을 따르면 그의 초대형 교회 프로그램은 "부흥 각성 또는 기적이다. 19개 나라와 50개 주 모두에서 1만 2,000개가 넘는 교회들이 목적이 이끄는 삶 40일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 교회의 많은 수가 그들 회중의 역사 속에서 가장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라고 보고해 왔다." (2)"릭은 또한 Pastors.com의 창설자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격려하는 글로벌 인터넷 공동체이다. 6만이 넘는 목사들이 릭 워렌의 사역 툴 박스를 구독한다." (3)이 웹 페이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의 목적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도구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목사들과 사역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당신이 구매하는 모든 자료들은 제3세계의 150만이 넘는 목사들과 평신도 목사들에게 무료 자료들을 제공하는 것을 돕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후원을 통해서 7개 대륙 모두에서 117개국이 넘는 곳에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셨다." 

(4)이 운동은 전 지구적 제국이 되어 가고 있다. 워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나님은 전 지구적 하나님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이미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장 큰 미디어들과 복합 기업들은 모두 다국적이다. 지구본이나 지도를 가지고 나라의 이름을 지명하면서 기도하라.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만일 네가 구하면 내가 열방을 주리라. 온 땅의 백성이 네 것이 되리라.\'" (5)(그러나 워렌은 이 약속이 예수님께 특정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이것은 초대형 교회가 확장을 구하라고 주어진 구절이 아니다) 심지어 사업 세계에서도 존경심을 가지고 이것을 쳐다보고 있다. Forbes.com은 \'기독교 자본주의 초대형 교회들, 초대형 사업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추켜세우고 있다. 

"아마도 교회들은 기업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릭 워렌 목사는 1980년도에 캘리포니아 레이크 포리스트에서 새들백교회를 창설했는데, 그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기술들과 마케팅을 솜씨 좋게 사용해 왔다. 의심할 것 없이 교회들은 기업들로부터 몇몇 귀중한 교훈들을 배워 왔다. 지금은 아마도 교회들이 사업에 대해서 한두 가지 가르칠 수 있을 정도다. 회사들은 분명히 무급의 충성스러운 봉사자들의 무리를 가지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역자 주: 교회가 사업적인 면을 수용해서 성장한 것을 거울삼아, 회사들이 교회들에게서 배운다면 급료를 주지 않고도 충성스런 직원들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임)

(6)워렌이 뽐내고 있는 사업적 수완으로 영향을 미치는 왕국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의 목사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2002년 9월에 그의 책이 나온 이후 적어도 1,800만 부가 팔려 나갔다. 지금은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다. 문자적으로 수천의 교회들이 40일 목적이라 불리는 특별한 캠페인 기간에 이 책과 이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들을 사용해 왔다. 이 책은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다섯 가지 목적을 40일 동안에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40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진정한 이 책의 논제는 영문판 136페이지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다섯 가지 깊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그것들은 삶의 목적, 함께 사는 사람들, 삶의 원리들, 생존을 위한 직업,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다. 한 장소에서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교회 밖에 없다."

(7)워렌은 \'가장 깊은 필요\'라고 내어 놓은 목록에서 처참하게도 잘못 짚었다. 성경의 권위에 비추면 사람의 첫 번째요 가장 우선적인 필요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의로움이다. 인간의 죄와 죄의 성품을 위한 속죄로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의뿐이다. 이 으뜸가는 인간의 필요는 성경에서 일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렌은 그의 \'가장 깊은 필요\' 목록에 아예 이 기본적인 진리를 언급하지도 않는다. 워렌이 하나님의 목적을 사람의 방법으로 재빨리 바꿔치기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유혹과 같은 유의 것이다. 사탄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영적인 목적을 얻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워렌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셔서 당신의 다섯 가지 가장 깊은 필요를 만족시킨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에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8)워렌은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과 인격에 대한 순종을 자신의 필요를 얻기 위해 교회에 복종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교묘한 유혹이다. 


워렌의 복음, 잘못된 뿌리 

사도 바울은 세상 전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복음의 필요를 제시하였다. 그는 선포하였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모든 사람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이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따라서 각자가 온전한 의를 필요로 한다. 야고보는 사람의 전체적인 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야 2:10)."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함은 복음의 필요를 드러내고 그것이 복음을 위한 기초이다. 성령님에 의한 죄의 각성은 죄인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진정으로 믿음을 두도록 이끈다. 워렌에게서는 이런 죄의 각성은 \'자아의 무의식적 고통\'의 상태와 같은 심리학적 용어로 축소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 의해 조정받는다.…죄에 이끌리는 사람들은 기억에 의해 조작되어진다. 그들은 그들의 과거가 그들의 미래를 통제하도록 놔둔다. 그들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그들 자신의 성공을 파괴함으로 그들 자신을 징계한다. 가인이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죄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그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목적이 없이 삶 가운데 떠돌고 있음을 보여 준다." (원서 27~28쪽 인용) (역자 주: 워렌의 이 갖다 붙이기식 해석은 자신의 책 제목과 어울리도록 고안하였지만, 창세기 4장 12절의 이 구절은 목적 없이 떠도는 유랑인을 묘사하기보다는 죄의 결과로서 죄 짐을 지고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죄의 형벌을 두려워하여 떨고 번민하며 사람들에게서 거부당하는 죄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죄는 무한한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 범한 것이므로 무한한 중요성을 가진 악으로 제시하는 대신 워렌의 대중적인 심리학은 죄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성공을 파괴시키는\' 요인 정도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교적 배경이나 교리적 관점을 묻지 않으신다. 오직 한 가지 문제되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에게 한 것을 당신이 받아들였느냐는 것과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을 배웠느냐는 점이다." (원서 34쪽 인용)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을 배웠다면 당신은 그분과 함께 당신의 남은 영원함을 보내도록 초청받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예수님의 사랑, 용서 그리고 구원을 거절하면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히 지내게 될 것이다." (원서 37쪽 인용) 

성경에 따르면 죄의 각성을 경험하지 않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라"고 단순히 얘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스운 것이다. 누구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을 갖지 않은 채로 그리고 죄로부터 돌아서지 않은 채로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록 "그분을 믿고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함은 진실이지만, 그 사랑과 믿음은 성령님께서 그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는 소망이 없는 타락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워렌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죄를 정의하고자 애쓰고 있다. 

"모든 죄는 그 뿌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실패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교만한 거역이며, 사탄과 우리의 타락을 일으킨 바로 그 죄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한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원서 55쪽 인용) 

비록 이것은 진실이지만 워렌은 여전히 개인적인 죄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완전한 희생에 대한 개인적인 필요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곧 그 증거를 제시하겠지만 워렌의 지속적인 \'자아 가치\' 그리고 \'진정한 자아\'의 선언은 \'교만한 거역\'에 대해 그가 말한 것을 전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그의 책과 운동은 \'자아 가치\'와 \'진정한 자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어서 \'교만한 거역\'이 사탄과 마찬가지로 타락의 원인임을 지지한다. 워렌이 만들어 낸 이런 유의 모순적인 언급은 그 책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라고 한 사도 바울과 같은 확신이 없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진정한 믿음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성화함에 자라지도 않는다. 워렌의 복음 메시지에 있어서의 첫 번째 핵심 오류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의 부인이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 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워렌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 

그가 책에서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보면 워렌의 복음 메시지는 더 악화된다. 그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확신시킨다. 

"진정한 삶은 당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탁할 때 시작된다. 만일 당신이 이렇게 했다는 확신이 없다면, 당신이 해야 할 것이라고는 받아들이고 믿는 것뿐이다. 성경은 약속한다. \'영접하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하는가?" (원서 58쪽 인용) 

워렌이 요한복음 1장 12절을 제시하는 중에 그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이어지는 13절인데 이것은 어떻게 사람이 거듭나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워렌은 영접하고 믿는다는 것이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바꾸어지기 때문이다. 이 필수적인 점을 빼 버리는 것은 초점을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돌린다.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초점을 바꾸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자신을 바꾸기 위한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 은혜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만일 워렌이 그의 독자들에게 은혜를 위하여 하나님을 구하도록 가르쳤다면, 그는 마케팅을 위한 인스턴트식 메시지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워렌에게서는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는 부분을 빼 버리는 것이 이득이 되는 것이다. 이 필수적인 복음의 요소를 빼어 버림으로써 워렌은 사실상 이 성경 구절이 제외된다고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5~16)." 

영생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로써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의 목적이다. 워렌이 말하는 목적은 정반대이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진정한 삶은 자신을 드림으로써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워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값을 지불해야 할 속임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갈 6:7, 히 10:31)." 하나님의 보복하시는 분노의 힘과 공포는 크다.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하여는 영원한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처벌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워렌은 그의 가짜 복음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먼저, 믿으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그분의 목적을 위하여 당신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으라. 당신은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라. 당신이 영원 이후까지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으라.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여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과 관계를 가지도록 하신 것을 믿으라. 당신이 무슨 일을 했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둘째, 영접하라. 예수님을 주인과 구주로서 당신의 삶에 모셔 들이라. 당신의 죄를 위한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여라. 성령을 받으라. 그분은 당신의 삶의 목적을 채울 힘을 당신에게 줄 것이다. 어디서 당신이 이것을 읽든지 나는 당신이 고개를 숙이고 당신의 영원을 바꿀 기도를 조용하게 속삭일 것을 초청한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으며 당신을 영접합니다." 어서 그렇게 하라.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그 기도를 드렸다면, 축하한다! 하나님의 가족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한다!" (원서 58~59쪽 인용) 

워렌의 가르침을 따르면 한 사람의 영원을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이 속삭인 바로 그 기도이다. 극악한 죄를 드러내고 그것의 결과를 제시하기보다는 워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당신이 무엇을 했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하나의 달콤한 거짓말을 가지고 그는 구약의 예언자의 모든 가르침과 죄를 혐오하고 회개의 필요성에 대한 일관적인 가르침을 베푼 주 그리스도 예수와 사도들을 쓸어버리려고 시도한다. "구원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롬 1:16~17)" 복음 대신에 워렌은 그저 속삭이는 하나의 기도를 주고 있다. 완전한 삶과 완전한 희생으로 진정한 구원의 기초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보다 더 큰 모욕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증거되었다고 선포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하나님 앞에서 죄는 처벌되어야 했고 참의가 세워져야 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에 대한 그분의 진노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함 삶과 완전한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워렌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죄에 이끌리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파괴하는\' 것으로 얘기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증거되어진 완전한 의의 전체적인 개념을 전적으로 빼먹고 있다. 이 누락은 완전한 의를 얻는 방편으로서의 은혜의 개념을 누락시킨다. 워렌의 교리에 따르면 구원은 "당신이 머리를 숙이고 당신의 영원을 바꿀 기도를 조용하게 속삭이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이 진정한 신자에게 믿어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역에 기반하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냄으로 우리의 눈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고정되게 한다. 워렌의 가짜 복음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가족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괴이하게 주제넘은 주장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화 있을진저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거짓 복음과 하나님의 가족에 들어옴에 대한 거짓 확신에 의하여 워렌은 진리를 찾는 일을 배제시켰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 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복음은 주님의 완성된 사역이 선포되는 것이며 회개를 무시하고 구속의 적용과 의미를 모욕하는 속삭이는 기도를 추가하는 거짓에 의하여 바꾸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워렌의 목적으로 바꾸는 것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주 그리스도 예수와 복음을 모욕하는 데에는 형벌이 따른다. 장물을 취하는 자는 도둑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이런 거짓 복음을 촉진하는 사람은 하나님 눈앞에서 자신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아 가치, 사람을 영화롭게 함 

워렌의 프로그램의 기초는 자신의 자아 가치의 상상을 증강시키는 약속된 즉각적인 결과에 대한 강한 호소이다.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은, 사람은 본성적으로 타락한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고 죄와 허물로 죽었으며 오직 자신 밖에서만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희망이 있다는 엄숙한 사실이다. 비록 워렌이 이 책은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다"(원서 17쪽 인용)고 언급하고 있지만, 주요 초점은 사람의 \'자아 가치\'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독자의 자기 관심에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아래에 몇 가지 예가 있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보는 대로 당신의 삶은 형성된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할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원서 41쪽 인용) 

"당신은 놀라운 능력을 가진 꾸러미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이다. 교회의 책임 중 일부는 당신의 능력을 결정하고 풀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원서 242쪽 인용)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당신을 형성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 당신은 당신의 모양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즐기기를 배워야 하고 그것을 완전한 잠재력으로 개발시켜야 한다." (원서 249쪽 인용) 

이것은 힌두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대등하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알기 위해 나아옴으로써 브라만의 지식에 이르게 된다" (9)워렌의 가르침이 힌두교와 비교되기는 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원천은 칼 융 (Carl Jung)이다. \'사람의 내부 소리의 힘\'을 발견하는 것 또는 사람의 완전한 잠재력은 융이 다음과 같이 가르친 것이다. "오직 내부 소리의 힘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인격체가 된다." (10)워렌의 가르침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로마 가톨릭주의와 동일한 전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바티칸의 공식적인 근본적 출발점은 사람 자신이다. 로마 가톨릭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구원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 자신이다.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은 인류이다. 이 토론에서 핵심은 따라서 사람이다. 사람은 전체적이고 총제적인 것으로 육체와 영혼, 본질과 양심, 마음과 의지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이 이 신성한 종교 회의에서 사람의 고상한 운명과 그 안에 있는 신성한 요소의 확신을 주창하는 가운데 그들의 운명과 연락되는 형제애의 감각을 촉진하는 일에 인류와 기탄없이 협력할 것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11)\'사람의 형상을 발견하여 수용하고 그것의 완전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로마교회와 힌두교와 같은 기초적 토대이지만, 이슬람과 불교와도 역시 일맥상통한다. 모두가 인류의 기본적 선함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있다. 워렌은 이 기초적인 토대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영원을 위하여 자신과 함께 둘 만큼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기신다면 당신이 이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원서 63쪽 인용) 

성경은 그러나 사람에게 그러한 가치와 선함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성령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 

워렌은 심지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참된 자아\'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왜곡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성경에 이르기를 \'스스로 돕는 것은 전혀 돕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을 발견하고 당신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길은 자기희생의 길이며 이것이 나의 길이다.\'"(원서 19쪽 인용) 그가 인용한 구절은 (역자 주: 성경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해석으로 비평되고 있는 유진 피터슨의 책)에 적힌 마태복음 16장 25절의 꾸며 낸 의역을 인용한 것이다. 주님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죽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 구절은 \'참된 자아\' 혹은 자기 존중에 대한 어떤 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워렌은 주님이 "자신과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고 얘기한 것처럼 공상하도록 위조된 의역을 사용했다. 당신의 \'참된 자아\' 찾기 열풍은 1960년대의 히피 그룹들의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대중화되어 버린 기독교 타락의 표식이 되었다. 


자아를 높인 \'구원\'은 무가치하다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대하여 워렌은 많은 방법으로 가르친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당신이 자아의 어느 한 부분을 거절하는 것은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거절하는 것이다." (원서 75쪽 인용) 

"당신이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랑으로 당신을 보신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당신이 지구상에 유일한 사람인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신다." (원서 75쪽 인용) 

그러나 워렌은 사람에게 대한 분별없는 찬양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을 영화롭게 하는 정도는 독자들의 개인적인 가치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목적으로 만드는 구절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자아 가치\'를, 복음을 곡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 자신을 모욕하는 데에 들이민다. 워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하나님 앞에 당신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고 싶다면 십자가에서 팔을 뻗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라.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 네가 없이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겠다.\'" (원서 79쪽 인용) 

"네가 없이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겠다(I\'d rather die than live without you)"는 backstreet boys(역자 주: 미국의 보컬 그룹)의 노랫말의 일부이다. (12)워렌이 이 세속 가사의 구절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은 신성모독이다. 신성을 가진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 만일 예수님이 이런 의존성을 가진 분이라면 그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워렌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거룩하지 않으며, 모욕적이며 불경한 것이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조정하는 위치에 죄인을 두는 것이다. 이런 것이 신성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계 13:6)."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은 하나님이 "의로우시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는(롬 3:26)" 분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렌의 교리는 하나님의 목적의 중심부에 죄인을 두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의 초점이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과 하나님이 인격으로서 의롭고 거룩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인은 값이 지불된 구속의 은혜의 수령자로서 하나님의 의의 큰 증거에 포함되었다. 워렌의 죄인에 대한 웅장한 칭찬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수행하신다는 성경의 메시지에 완전히 반대하여 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이 없이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을 위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찬양받기 위하여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목적은 워렌에게서는 비웃음과 자만심과 심지어 신성모독으로 드러난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존재의 모든 부분에서 부패되었다. 그리고 부패함을 막고 자신을 추구하여 구원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워렌과 같이 타락한 인간의 위치를 부추겨 세우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도덕적 구원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무가치한 것이다. 사람의 유일한 희망은 자아 외부에 있으며 그것은 신적인 가치와 권능 안에 있다. 인간의 본성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 모든 인류는 영적인 삶의 원리와 능력에 있어 결핍되어 있다. 그들은 삶의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유죄판결을 받은 죄인을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 그래서 주 그리스도 예수님은 선포한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그리스도는 선언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그는 타락한 인간에 의해 유전된 것은 부패하였음을 의미한다. 만일 자아 가치의 원리와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능력이 참이라면, 그리스도를 선택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원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하여 정당하게 자랑할 수 있다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진리는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는 개인적인 상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비로소 합당한 감사를 돌리게 된다. 구원은 자아 가치나 자아 촉진에서가 아니라 신적인 능력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전적으로 분명하다.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은 은혜를 주심으로 인간의 영적으로 죽은 의지에 생명을 주신다. 본성적인 인간의 자만심을 극복하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이며 그래서 사람은 생명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준비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자아 구원\'은 인간의 가치와 위엄에 기초하여 촉진되는데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만든 종교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워렌의 책과 운동의 중추적인 메시지다. 워렌의 가르침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성경의 진리는 부인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전적인 필요를 부인하는 셈이다. 영적인 사망과 은혜의 관계는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사람의 전적인 타락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복음은 여전히 죽은 문자로 남아 있게 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성경의 진리를 빼 버리고 여기에 인간의 자아 가치를 대체해 넣음으로써 워렌의 거만함은 성경에 기록된 경지까지 이른다.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 14:14)." 


결론 

우리는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주어진 가짜 복음 메시지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 및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빌 1:27)" 일에 의무를 가진다. 워렌의 운동을 통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의 복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속임을 당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였다고 진지하게 믿는 상당수의 사람들의 경우, 사실 그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사람이 만든 형식이고 교회에 \'계약\'을 위탁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들을 충족시키겠다는 서약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의무를 부여해 왔다. 워렌이 좋은 것이라고 칭찬한 내용을 다룬 글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주님과 사도들이 가짜 복음의 제시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있음을 간과한다. 

허위 복음을 제시하고 로마 가톨릭의 배교적 체계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기를 좋아하고 성경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그리스도를 품는 사람의 주장을 폭로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참부흥과 사람들의 삶에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일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는 은혜의 복음의 모든 빛을 분명히 제시한 다음에 의도적으로 속여 빼앗는 속이는 자이다. 지금 주 그리스도의 이름과 위엄을 속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도 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참복음으로부터 떠나는 위험과 악은 사실상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의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의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1:9)." 

이 글은 저자인 Richard Bennett의 허락에 따라 부분 발췌가 아닌 전체를 제시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습니다. 원문은 웹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참조


인용출처 

1. Bruce Ryskamp, president of Zondervan. 10/22/04 






7. Rick Warren, The Purpose Driven Lif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2) Page numbers only in succeeding citations. 

8.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994), #181 (Emphasis ours.) 

9. Atman and Brahman as explained on http://www.wsu.edu:8080/~dee/GLOSSARY/BRAHMAN.HTM 12/2/2002 

10. The Development of Personality Collected Works 17 as quoted on: http://www.sacredsandwich.com/warren_jung_chart.htm 11/18/04 

11. Vatican II Documents No. 64, Gaudium et Spes, 7 Dec 1965 in Vatican Council II The Conciliar and Post Conciliar Documents, Austin P. Flannery, ed., 1981 edition (Northport, NY: Costello Publ. Co. 1975) Para 3 



리챠드 베넷 (Richard Bennett) 

한글 번역 및 서론: 이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