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어느새 전파되는 것이 나, 또는 내 것?2007-10-30 10:16:46
Writer

예닮 목장을 섬기고 있는 문진옥입니다.

이제 세 번의 목장 모임을 가지고 난 후 느끼는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목장엔 아직 믿지 못하시는 분이 3분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목장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나누려 애쓰고 있습니다. 복음을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원하는 순간 내 마음 한 구석에 믿지 못하는, 믿으려 하지 않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겨자씨 만큼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을 이야기하고 서로 질문과 대답과 대화를 합니다. 그 시간이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그 순간 믿지 않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다는 생각이 아리나 마치 내 스스로에게 복음을 다시 묻고, 믿음을 다시 묻고 하는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순간 내가 바로 복음 전파의 대상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의 상황 속에서도 어느 한 순간 입으로 이야기 하는 내 자신과 분리된 또 하나의 생각이 머리에 생생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인가 아니만 내 이야기 인가?', '나를 통해 일은 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내 이야기 인가?'. 그리고 나서 마음 한 구석에 조금만 부담으로 오는 것은 '이제 어디서 보고, 들은 이야기 하는 것은 최소화하자. 이야기의 주어는 하나님이 되도록 하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전에 목사님의 설교 중 헤롯이 가이사랴에서 회중의 신성시하는 칭송에 자고해져 결국 죽게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느새 전파되는 것이 나 또는 나의 것이 되지 않도록 더욱 기도합니다.

아래 이용규 선교사님의 생각을 보면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도 내 믿음, 내 생각, 내 방식을 전도하는 것이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더 편해졌습니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거든요. 나는 좀 믿지 못할 구석도 있거든요. 내 안에는 아직 구린 구석도 있거든요.

하나님은 우리 목장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그 수준으로 우리를 훈련하시고 인도하시라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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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교회 전통에서 현대 교회가 배울 점 1

동방 교회의 선교 역사에서 보이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이 특징들 가운데에는 현대교회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이번 호부터는 이러한 동방 교회의 전통 가운데 발견되는 교훈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동방 교회가 적대적인 정치 사회 환경 가운데서 박해를 이기며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다.  

동방 교회가 자리한 지역은 초기 단계부터 교회의 신앙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정치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서방의 천주교회의 경우 교회는 국가 권력의 비호를 받거나 국가 권력과 결탁되어 왔다.  교회의 존재가 정치 권력이나 사회에 의해 위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보호를 받는 상황이었다.  반면 동방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종교로부터의 질시와 배척을 받기도 하고 또 정권의 탄압을 받은 예가 부지기수다.  

페르시아 제국이 발흥해서 로마의 동방령을 장악하고 난 후 그 지역은 이후 기원 후 7세기를 지나면서 이슬람권의 중심부로 바뀌어 간다.  
결국 로마 제국 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동방 지역의 교회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영내에 위치하게 되었다.  성속 합일의 구조를 가졌던 비잔틴 교회와는 달리 동쪽에서는 그러한 구조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비잔틴 제국과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던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던 기독교인들은 비잔틴의 교회의 지시를 받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는 위험한 일이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 내의 동방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비잔틴 교회에 대한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경향을 지속적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점차적으로 비잔틴 교회와 심정적 분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구조적으로 비잔틴 제국과 적대적인 지역에 뿌리내려야 했던 동방 지역의 교회는 정치적, 교권적으로 비잔틴 교회와 구별될 수 밖에 없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단은 동방 교회의 하나였지만 점차적으로 페르시아 제국내의 교회는 이 교리를 수용함으로 해서 자신을 비잔틴 제국 내의 카톨릭과 분리해 가면서 차별화해 갔다.  
비잔틴 제국에서의 박해를 받아서 페르시아 제국 영내로 들어온 네스토리안들에게 있어서도 비잔틴 제국 내에서와는 달리 더 이상 자신들이 믿는 신앙은 다수가 따르는 신앙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십만의 네스토리안들이 잠재적 로마의 스파이로 간주되어 대규모의 학살을 받기에 이른다.

로마를 중심으로 교권을 통일하려고 했던 카톨릭의 지향성은 결국 동쪽 지역으로의 발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동방으로의 선교를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동방 교회는 불리한 정치 사회적 환경과 그로부터 오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동쪽을 향해 선교사들을 파견하고 교회를 외연적으로 확장해 갔다.  

이슬람 제국이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의 일부를 점령하여 로마 제국의 동방 지역을 손에 넣음으로 해서 동방 교회는 이슬람권이라는 사회 환경 하에 처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점차적으로 확산되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영향과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동방 교회들은 정치적 사회적 탄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수백년에 걸친 오랜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동방 교회는 지금까지 이슬람권에서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박해를 받으며 자라났고 또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선교해 온 역사적 전통은 현재 비서구 지역에서 성장하는 교회에 적용 가능한 시사점을 주기에 적절하다.  
오랜 동안 국가의 비호를 받았거나 국가 기구의 중요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던 유럽의 교회와는 달리 현재 박해받고 또는 사회에서 소수자로 존재하는 아시아 교회에 보다 적합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동방 지역의 교회에서 나타나는 포용성 부분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비잔틴에서 문제가 되었던 교리적 차이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헬레니즘의 전통에서 헬라 철학으로 신학을 정리하려 했기에 문제가 되었던 교리 논쟁이 동방 지역에서는 논리적인 어려움을 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성론자나 양성론자 모두 갈등 없이 페르시아 교회에서 공존하는 것이 한동안 가능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비잔틴 제국 내에서와는 달리 교리 논쟁으로 교회가 갈라지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에서 보이듯이 지역마다 문화적인 토대가 있어서 교회의 존재 방식이 그 틀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동방 교회가 동쪽 지역의 선교에서 큰 결실을 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는 동방의 문화적 컨텍스트 안에서의 교회를 설립해 갔다는 점이다.  
동방 교회의 중국에서의 선교 예를 보면 이들이 현재 선교에서 강조되고 있는 상황화와 토착화 두 가지 개념을 본래적으로 체득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문화적인 틀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그들의 언어로 복음과 교리를 제시하려고 한 유연성은 이미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전통에 녹아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은 특히 한국 선교가 배워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고 선교에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는데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자기 기준으로 현지인과 문화를 평가하고 자신의 교회 경험과 문화적 가치를 피선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삼세계에서 한국인은 힘과 재정적 능력이 있는 자들로 비쳐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일시적 순응은 얻을지 몰라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한국 선교사들의 희생어린 헌신이 오히려 문화적 거부감과 민족적 굴욕감을 낳을 수도 있음을 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언 사역자 마크 비셔가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몽골의 교인들을 대상으로도 큰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어느 집회 중 문득 한국인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  
한국인 선교사들의 희생과 수고와 대한 감사의 말과 함께 애정어린 그러나 매우 뼈아픈 지적을 한가지 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이 있는데 한국의 교회를 심으려 하지 말라”라는 말이었다.  
내가 마음아팠던 것은 그 때 앉아있던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온 것이다.  몽골인들은 주변 민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기 때문에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선교사의 문제점이 마크 비셔의 입을 통해 지적되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참 마음아픈 현장이었다.  
몽골에는 유난히 귀한 선교사분들이 와서 귀한 헌신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들의 수고가 문화적인 굴절 때문에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좋은 부모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 자신이 잘 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부모에 대하여 불만이 있음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좋은 부모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려거나 아이의 철없음을 탓하기 보다는 아이들의 눈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좋은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가르치나 보다는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심두기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교사는 내 기준으로 선교 대상을 판단하면 안되고 그들의 눈으로 자신을 살피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들의 상황과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예리한 작업이 선교 활동 내내 지속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