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산상수훈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나는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마음이 가난할 수 도, 애통해 할 수도, 온유할 수도 없는 자 라는 것입니다. 이 것은 푸념도 아니고, 겸손도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볼 수 록 느껴지는 것은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 안에 축약되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평범하게는 도무지 상상할 수 도 없는 깊이가 그 속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마음이 가난한 자" 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날 내 행동을 보니, 나는 마음이 부유한 자 처럼 행동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히 나는 복음을 깨달았고, 이해 했고, 은혜로 그 것을 받았다고, 주님께 감사/경배/찬양을 드렸지만 내 몸은 아직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서집니다. 깨집니다. 그리고, 내 몸이 그 것을 가진 것 같은 즈음에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내가 이해했다는 그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이였는 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넓어진 이해로 다시 내 몸둥아리 (여기서 몸둥아리라는 의미는 나의 실질적인 행동과 생각을 가르킵니다.) 를 쳐다보니 나의 삶의 현장은 그 이해를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나 역 부족임을 알게 됩니다.
몇 번의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이제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깨닫고 행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40일 금식 후의 빵에 대한 유혹을 어찌 내 몸둥아리가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40일을 금식 할 용기/상황/이유 조차도 없는데.....
하나님과 동등한 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까지 낮아지신 그 마음을 어찌 품을 수 있습니까?
작은 칭찬에도 우쭐하고, 작은 격려에도 낙심하는 정말 낮아지기 싫어하는 나인데....
그리고, 그 분이 가신 생명의 길을 내가 가라고 하시니.....
"오 하나님, 저를 떠나소서,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 순식간에 입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룬다고 말씀하시니,
그리고, 이 길외에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죽었다 생각하고
오늘도 옷을 벗고, 속 살을 내보이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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