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적극적인 신앙" vs. "상한 심령" (예수님짜리 리포트1)2002-03-02 00: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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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할 뿐 아니라, 상당기간 그 사람의 perspective를 좌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 대부분의 경우처럼--- "위로, 격려, 소망, 힘" 등이었습니다.  재수생 시절, 1부예배를 드리고, 학원에 가서 공부하던 저를 진정으로 만나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은혜" 그 자체였지요. 그런데, 그 소중한 경험이 지금 저에게는 참 뼈아픈 회한으로 다가옵니다.  분명 하나님은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진정한 이유, 구속 곧 죄사함(엡 1:7)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를 못 했던 겁니다.  잠깐 "남의 탓"을 하자면, 하나님의 principle보다는 사람들의 need에 더 민감했던 교회에서 "죄"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분명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오늘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이 너무나 disappointing해서 "죄" 문제는 가급적 대충 넘어가고 싶었고, 교회는 그러한 저의 (사람들의) need를 묵인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죄"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저는 제 신앙의 외형적 성장(?)을 바로 "행위" 단계에서 구하게 되었지요.  교회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 (not necessarily 하나님의 인정)을 통해 제 신앙을 check하고 싶었고, "한 동안" 그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못 버티고 넘어지더군요.  아니, 넘어지게 해 주시더라구요. 얼마나 다행인지...... 그련데, 이러한 일련의 sequence를 결정적으로 부추겼던 교회의 표어가 바로 "적극적인 신앙 !"이었습니다. 혹시, 성경봉독은 설교 시작할 때 딱 한 번 하고, 단 한 차례도 성경말씀이 인용되지 않는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셨나요?  물론 저의 과장이지만, 단지 "율법"과 "축복" 중심의 설교말씀은 때때로 성경구절이 별 필요없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던 것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결국 "적극적인 신앙"이란 "세상"에서 축복받게 해주는 key였습니다.     저는 이제 "상한 심령"을 간증처럼 전하시는 목사님께 예수님짜리 제자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새로운(기초적) 차원이 목사님을 통해 펼쳐지고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저는 "다 좋은데 지금 이 땅에서는 어떡하란 얘기냐"의 질문을 100% 해결하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상한 심령"이 "적극적인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함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넘어뜨릴 수 없도록 예수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서고 싶습니다.  "상한 심령"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님의 "군병"될 수 없음을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적극적인 신앙" 을 추구하다 "상한 심령"으로 전락하지 말고, "상한 심령"을 기초로 "적극적인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