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황진이-서경덕-예수2006-12-22 10:38:32
Writer

 요즘 황진이 드라마를 하는데 아래는 ***퍼온글*** 입니다. 끝까지 읽어보셔야 은혜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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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원래 좋은 가문의 처녀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을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동네 총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앞으로 나는 나를 좋아하는 모든 남자를 위해 살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고 유명한 기생이 되었다.

황진이는 막가파 기생이 아니고 아주 뛰어난 미모뿐 아니라 학문과 지식으로 유명한 남자들을 다 자신의 치마폭에 넣었고 그 당시 부처님같이 자기 절제에 뛰어나다는 지족선사까지도 파계시켰다. 세상 남자들이 그녀를 보고 홀리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어느날 서경덕이라는 유명한 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학자가 아주 도덕적이고 바르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 남자를 꺽으려 했다. 지금까지 황진이 가 보아온 남자들은 세 가지 타입이었으니, 첫째는 황진이을 탐하고 자신에게 직접 달려오는 타입이었으며, 둘째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 했으나 속으로는 역시 탐하는 타입이었으며, 세째 간혹간 지족선사처럼 자신의 도덕심과 수행을 내세워 아예 쳐다보려고도 , 만나지도 않으려는 타입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타입이던간에 황진이의 치마폭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없었는데..

황진이의 예측상 서경덕은 지족선사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고, 피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측은 빗나가 즐겁게 맞이 하는 것 아닌가? 언제나 찾아가도 꺼리낌 없이 맞이하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경계이상은 절대 침범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방에서 피곤한척 쓰러져있기도 하고... 때로 유혹도 하지만  피하지 않으면서도 지지 않는것이 아닌가?

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어느날인가는 서경덕에게 찾아가 자신이 배가 아프니 자신의 배를 쓸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서경덕이 손으로 그녀의 배를 쓸어주었다.. 그러니 그녀가 그래도 배가 아프니 선생님의 배로 자신의 배를 쓸어달라고 했다. 그러니 서경덕이 알았다고 하더니 정말 윗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황진이 생각에 드디어 이제 서경덕이 무릂을 꿇는 구나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윗옷을 벗고 자신이 누어있는 위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왠걸 서경덕이 황진이와 일자형으로 배를 쓸어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형으로 쓸어주는 것이 아닌가... 믿거나 말거나..

약간은 웃긴 이야기 였지만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시 나 나름대로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유혹들을 피하면서 과연 순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개똥철학적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유혹이란 꼭 여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것이었다. 나 나름대로의 결론은  절로 들어가서 스님이 되던지 교회의 목사나 신부가 되던지 하는 것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최상이 아닌가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그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한 방면의 실망과 또 한 방면의 희망을 주었다. 실망이라 함은 절에 들어가든 성당에 들어가든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깨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 나이가 들면서 보니 이는 진실 인 것 같다. 인간의 환경을 거룩하게 바꾸면 비록 위협과 유혹에 노출되는 기회는 줄어들지만, 그리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내적 욕망과 본성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방면의 희망이라 함은 피하지 않고도 맞서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답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그 이후로 서경덕의 일화를 머리에 새기게 되었다.

이 후 지내보니 이런 삶을 사신 아니 서경덕에 비교가 안되게 더 뛰어나게 사신 분이 계시니 그 분이 예수셨다. 

그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들이라 하는 종교적인 무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듯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탐하고, 죄인들을 멸시하였다. 죄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을 회피했으며 같이 있기를 피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시기도 하시고 죄인들과 섞이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욕망이 나타나지 않았고 죄를 흡수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비전과 힘을 그들에게 불어 넣으셨다.

지내보니 이런 삶은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본다. 이런 삶을 살려면 '환경'이 변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를 변케해야 한다. 나의 생각, 관념, 가치 이런 것이 변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 본성이 변하고 바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경덕을 기억하며 예수를 닮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