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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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전쟁 중 크리마스 이브의 평화2005-12-23 20: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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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중 크리스마스 이브에 No man's land에서 일어났던 영국군과 독일군의 휴전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은 후 링크도 클릭해 보세요.)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한 우파 청년의 권총이 불을 뿜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그 총탄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앞으로 4년 간 전 유럽이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는 신호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독일이 즉각적으로 지지하고 나섰고 이에 러시아는 총동원령으로 맞선다. 독일은 곧 러시아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 달 남짓 지난 8월 초, 프랑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벨기에를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슐리펜 계획'으로 알려진 독일군의 기본전략은 최대한 빨리 벨기에를 접수하고 프랑스를 점령한 후 바로 군대를 돌려 러시아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작전은 프랑스, 벨기에, 영국, 러시아 연합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고 만다.


어느 정도 퇴각한 독일군과 반격을 가하던 연합군은 벨기에를 중심으로한 소위 플랑드르 지역에 전선을 형성하게 되는데, 프랑스 국경지대를 따라 벨기에를 거쳐 동쪽으로 스위스에 이르는 600마일의 전선는 '서부전선'(the Western Front)이라고 한다.


서부전선에서의 전투는 극심한 소모전의 성격을 띠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연합군과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참호전'은 무제한적인 병력소모전에 가까왔다.


깊이 파놓은 참호에는 언제나 무릎까지 물이 차있었고 진흙 구덩이나 다름없어서 병사들의 전투환경은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참호 밖을 벗어나는 것은 바로 적 저격병의 과녁이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참호 속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진흙 범벅인 군복을 갈아입지도 못했고 항상 물에 흠뻑 젖어있는 군화를 벗을 수도 없었다. 참호 안은 극도의 긴장과 피로가 지배했고 병사들은 적군의 총탄보다 이런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더 많이 죽어갔다.


명령이 떨어져 진흙탕 같은 들판을 가로질러 적진으로 진격하는 경우, 당시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기관총 세례와 비오듯 하는 포격으로 무수한 사상자만 남겨둔채 원래의 참호로 돌아오고는 했다. 피차에 이런 공방이 매일 같은 지리하게 벌어졌다.


8월 초 전쟁이 시작될 때 양측의 군수뇌부는 국민들에게 이 전쟁이 몇 달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다. 하지만 전선의 교착상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런 호언장담은 무색해졌다. 몇 달 끌지 않을 전쟁에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섰던 병사들은 전장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고는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일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위해 양측 최고사령부는 국민들이 병사들에게 선물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도록 크게 독려한다. 그러나 사령부의 의도와 달리 병사들의 사기는 더 떨어지게 된다. 그들이 받은 카드와 선물들이 더 고향을 생각나게 했으며 이 전쟁이 크리스마스를 넘겨 장기화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서부전선


크리스마스를 1주일도 남기지 않은 12월 19일, 연합군은 전 전선에 걸쳐서 대대적인 공세를 가한다. 군 지휘부는 병사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심리적인 마지노선임을 잘 알고 전쟁의 승패를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총공세를 전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공세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위에 그치고 전선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휴전'(The Christmas Truce)이라고 알고 있는 사건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졌다. 여느 때처럼 참호 속에서 추위에 떨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군의 공격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영국군 병사의 귀에 독일군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영국군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처음에 이 노래소리가 영국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 위해서 독일군이 심리전을 펼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합창으로 변해가는 그 노래소리는 독일어로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영국군 쪽에서도 한두 명씩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한낮까지 총격과 포격이 교환되던 전선은 수 많은 양쪽 젊은이들의 크리스마스 캐롤 합창으로 가득찼다.


밤새 주거니 받거니 독일어와 영어로 캐롤이 울려퍼지던 전선에 조금씩 동이 터왔다. 시야가 완전히 분간될 무렵 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을 빠져나와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방아쇠에 손이 간 영국군 병사들은 그 독일군 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잠시 의아해했다. 그것은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트리였던 것이다.


순간 영국군 참호 속에는 동요의 빛이 흐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몇 몇 병사들이 참호 밖을 빠져나가 그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측 지휘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참호를 기어올라 상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부분의 병사들이 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다.


죽음의 땅인 No man's land를 멀쩡히 서서 산보하듯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믿기 어려웠다. 인사를 나눈 그들은 그제서야 들판에 무수히 널려있는 양쪽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게 되었다. 양측 지휘관은 시체들을 수습하기 위해 잠시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합의를 했고 그때부터 병사들은 전사자들의 시신을 날라다가 땅에 파묻기 시작했다. 전사한 병사들을 묻기 전에 잠깐 동안 기도를 드리는데 영국군 병사들을 묻을 때는 곁에 있던 독일군들이 독일어로 함께 기도하고 독일군 병사를 묻을 때에는 반대로 영국군 병사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사자들의 시체가 치워진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의 축구경기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눈이 녹고 내리고를 반복한 진흙벌판은 공을 차고 쫓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찼다. 축구경기가 끝난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기시작했다. 들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통성명을 하고 가족들의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가족들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가지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19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은 전쟁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병사들에 의한 비공식적인 휴전이 이루어졌다. 비록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적군이었지만 같은 상황에서 갈수록 무의미한 전쟁을 치르던 젊은이들에게 잠시나마 인간적인 공감대와 유대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양쪽 군수뇌부를 경악하게 했다. 곧 최고사령부로부터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내려왔다. 일선의 지휘관들에게는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하달되었다.


평화는 쉽게 깨졌다. 어느 날 밤 독일군 진영에서 여느 때처럼 합창 소리가 들려오자 현장의 영국군 지휘관에게 포격 명령이 떨어졌고 집중적인 포격 이후 독일군 진영에서는 노래소리가 아닌 사지가 병사들의 처절한 울부짖음 소리만 울려퍼졌다. 이 비명소리는 잠깐 동안 휴머니즘이 지배했던 전장이 야만의 전쟁터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생각하는 전쟁과 평화


어느 역사가는 진정한 20세기의 시작은 1914년 12월 14일이라고 말했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유럽 대륙을 휘몰아치던 시기, 유럽의 어느 들판에서 전쟁의 당사자인 젊은 병사들이 맺은 이 작은 휴전은 우리들로 하여금 전쟁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보게 한다. 155마일 휴전선에 100만 명이 넘는 남북의 젊은이가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더욱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진다.


성서는 이사야서에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그만두고 군사훈련도 하지 않는다"는 평화의 비젼을 제시한다. 이 평화의 비전이야말로 크리스마스를 더욱 크리스마스 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김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