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하나님을 보여주면 믿는다구요? [펌]2003-10-01 23: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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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이 가능하고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감각이나 경험을 중시하는 진화론자나 유물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도 믿지 못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그들 자신의 진정한 존재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감지하지는 못합니다. 자기 눈이나 자기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갖가지 색깔의 울긋불긋한 크레용으로 도화지 위에 자기 얼굴을 열심히 그리는 유치원생이라면 또 모를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지!" 하고 반박하길 좋아합니다. 대단히 외람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아무도 "내 눈이 본다"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내 눈'으로 '내'가 보는 거지요. 그 눈으로 보는 나란 존재의 실체는 사실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어디 숨어 있는 걸까요? 사랑의 큐피트 화살이 즐겨 과녘으로 삼는 하트(Heart), 즉 심장에요? 아니면 간에? 아니면 콩팥, 쓸개, 위장, 아니 뇌 속에? 무엇이 나입니까? 나는 내 몸의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과의사들이 환자를 수술할 때처럼 배를 열어 심장이나 콩팥을 만져본다고 해도 그 안에서 '나'란 존재를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내 몸' 자체가 '나'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지지 않나요? 사람들이 '내 마음'이라고 하며 자신의 손을 즐겨 가슴에 갖다대지만, 사실 거기에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증거를 한 가지만 더 대보기로 하지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유물론자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육체적 기능을 상실하여 죽으면 인간은 소멸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인간이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요? 나이가 다 차서 기력이 떨어져 죽음 직전에 놓인 한 노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노인 곁에 자식들이 둘러앉아 있습니다. 숨을 가늘게 쉬며 "내가 죽으면…" 하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과 싸늘하게 식은 시체 사이에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제가 가르쳐드리기 전에 먼저 잠깐만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달라졌나요? 아니 무엇이 없어졌습니까? 바로 '숨'이 없어졌습니다. 몸의 세포와 각 기능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결합시켜주는, 어쩌면 생기(生氣)라고도 하고 호흡이라고도 할(이 호흡이 떠나면 사람의 몸은 그 즉시 썩기 시작하지요) 그 무엇이 없어진 거죠. 곧 말(言)이 없어졌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유물론자들의 주장대로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사람이 죽는 즉시 그 몸이 '싹' 하고 없어져야 옳습니다. 사람의 존재가 몸뿐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몸은 그대로 있고 말만 없어집니다. 그 말이 곧 사람의 인격, 곧 영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혀와 입은 당신의 영혼이 부지런히 쉬지 않고 드나드는 출입구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보이는' 세상에 '안 보이는' 내가 산다 당신의 진정한 실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이 곧 당신입니다. 당신의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말을 글로 옮겨놓으면 보이긴 하지요. 그러나 말이 없는 글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글 이전에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글이 곧 그 사람"이란 말도 있지요.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사실은 그 글을 쓴 사람의 말을 '속귀'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은 사실 '영혼이 녹음되어 있는 오디오'(언제든 시공을 초월해 재생 가능한!)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말이 보이지 않듯(물론 당신의 말이 그대로 현실화되면 그 때는 비로소 '보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좀더 뒤에 자세히 살피기로 하죠) 당신의 실체인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심코, 별 생각없이 그저 쉽게 당신 자체라고 여기고 있는 당신의 몸에서는 결코 당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당신 자체가 이미 굉장히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걸 이제 한번쯤은 멈춰 서서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보이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당신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제발 당신을 나한테 한번 보여줘봐!"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건가요? 이제는 아마 "내 얼굴을 봐. 내 눈, 내 입을 봐. 이게 나야!"라고 하기보다는 "내 말을 들어봐. 이 인격, 바로 이게 나야!"라고 말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실체와 똑같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신, 그 창조주 하나님께는 무어라고 물어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지!" 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자신의 존재 자체도 사실은 안 보이는 존재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학'(現象學)을 전공한 달라스 윌라드라는 유명한 미국의 기독교철학자는 자신이 쓴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현재 물리적 몸을 지니고 있는 영적 존재이다. 몸에 대한 의식, 몸을 사용한 의지 및 행동능력을 통해 나는 내 몸과 그 주변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란 사람을 몸 안이나 몸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나를 또는 나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성격을 나의 어느 신체 부위에서 찾을 수는 없다. 나를 찾는답시고 내 몸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거나 심지어 현미경이나 기타 물리적 기구로 세밀히 뜯어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공간의 관계는 인간과 몸의 관계와 같다. 하나님은 공간을 점유하시고 공간 속에 넘쳐 흐르시지만, 그렇다고 공간 안에서 그분을 찾을 수는 없다." -안스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