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엄마의 옛날 이야기2004-03-20 04:23:53
Writer
내가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한 참 전의 일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인가 엄마에게 옛날이야기 듣던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동생이랑 나랑 둘이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선명히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도 재미있어서 동생이랑 나랑 엄청나게 웃던 그 순간. 그 때 내 눈 속에는 엄마로 가득했습니다. 그 때 내 귀속에는 엄마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내가 보호 받고있고, 사랑 받고 있음을 인지한 평안함이 가득했습니다. 부엌에서 우리는 서로 쭈그리고 앉아서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않으려고 귀를 바로 세우고 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엌에서 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문 옆에 있는 부뚜막에서 뭔가를 하시면서 이야기를 해 주셨고, 나랑 동생은 그 주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깔깔대며 배꼽을 잡고있던 모습이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엄마도 웃었습니다. 우리가 뒤로 자빠질 때 엄마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영원처럼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 셋이서 그렇게 함께 나누던 시간은 참으로 짧은 순간 이였는데도,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민영이랑 은교랑 동주랑 나랑 함께 노는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뭐가 그리 좋은 지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같이 즐거워집니다. 아빠가 내는 이상한 소리와 이상한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나도 행복한 웃음으로 내 얼굴을 가득 메웁니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던 그 순간에 엄마는 온전히 나의 엄마였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로 즐겁고, 그 채취로 인해 평안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순간 엄마는 아무런 다른 조건이 필요 없었습니다. 단지 나의 엄마라는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고, 내 앞에 지금 있다는 것 하나로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민영이랑 은교랑 동주랑 땀 흘리며 뛰어 노는 순간에는 아이들과 내가 얼마나 순수한 지 모릅니다. 그 순간은 세 명 모두 온전한 나의 딸들입니다. 내가 온전히 사랑하는 내 피붙이들입니다. 아무런 다른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내 딸들로서 내 앞에서 나와 함께 놀아주는 것 하나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인해 기쁘고 즐겁습니다. 아마 민영이도, 은교도, 동주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 후로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엄마에게 여러가지 불평들을 많이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습니다. 내 엄마는 예쁜 얼굴을 가지지도 않으셨고, 내 엄마는 아는 것도 많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것에 답을 잘 하지도 못하셨고, 내 엄마는 가난해서 여러가지로 나는 불편했습니다. 분명 전에 내게 이야기 들려 주시던 같은 분이신데, 엄마는 더 이상 온전한 나의 엄마가 아니였습니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불평은 내가 느끼지도 못하게 오랜시간 동안 내 마음에 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기는커녕 나의 걸림돌이 되는 엄마, 이것 저것 아들의 앞길을 미리 챙겨 주시기 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쁘신 엄마, 그래서 나는 항상 내 앞길을 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고, 친구들의 엄마와 비교해 볼 때 내 엄마는 허점투성이셨습니다. 내 머리가 커질수록 그 허점은 내게 크게 보였고, 나도 알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 그 허점은 나의 운명에 대한 한탄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나를 웃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워줄 어떤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아니라, 돈 이였고, 지식 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시키는 시간이 되면 민영이와 은교는 온전히 나의 딸이 되지 못합니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공부시간에는 필요한 것이 생깁니다. 잘 알아듣고 이해해야 하고, 어려운 것도 차근차근 해결 해 내는 능력을 나는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민영이, 은교 그 이름 자체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동주는 아직 모르겠지만, 민영이와 은교도 생일잔치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이 아빠를 보는 잣대가 될 줄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옛날 이야기 듣던 그 순간에는 내 마음속에 “왜” 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 안에 아주 지극히 단순한 사랑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존재에 대한 사랑과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이 나를 평안하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이분이 나의 엄마일까? 왜 나는 여기 이렇게 있는 걸까? 왜 엄마는 나를 낳았을까? 왜 엄마는 가난할까? 왜 엄마는 못 생겼고, 왜 나도 이렇게 못 생기게 태어났을까? 왜 엄마는 동생을 낳았을까?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을까? 왜 엄마는 내 엄마일까? …이런 질문들 보다는 나는 그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엄마와 나와의 관계를 누리고 즐기고 있었고, 그 순간 내 눈 속에 가득한 엄마라는 존재가 내게 주는 그 따뜻한 감정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놀고 있는 그 순간들도 같은 마음으로 나는 아이들을 대 합니다. 아무런 질문이 없고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아이들과 나의 관계를 누리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왜 세상을 지으셨나요? 마귀는 어디서 생겨났나요? 지구의 수명은 얼마인가요? 진화와 창조, 어느것이 맞나요? 왜 내게는 이렇게 어려운 일들만 주시나요? 왜 나는 가난하게 살게 하시나요? 왜 나는 똑똑하지 못하게 태어났나요? 왜 세상은 정직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경우가 많나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어떻게 하면 구원 받나요? 이렇게 해도 구원 받나요? 나는 진정 크리스천인가요? 저 사람은 진정 크리스천인가요? 이 길이 진정 옳은 길인가요? 하나님은 진정 계신가요? 우리는 수 많은 질문들을 하나님을 향해 품고 있습니다. 그 질문들이 우리 안에 있는 이상 하나님과 내가 지금 이 순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누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도무지 배꼽잡고 웃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사랑에 마음껏 젖어, 내가 보호 받고 있고 있다는 평안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엄마를 느끼지 못 할 때 나는 엄마에 대해서 단순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단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느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엄마 앞에서 웃을 때 그 분도 함께 나로 인해 즐거워하셨습니다. 내가 엄마의 존재 자체를 누릴 때 나는 또한 그 분 앞에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 계신 엄마, 지금도 살아계신 내 어머니이시지만, 내가 복잡해지고, 질문이 많아지니까 나는 거기 그대로 계신 그 분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은 없어지고 내 안에 있는 질문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가만히 보니까 “나” 자신 이였습니다. 내 속에 있는 욕심, 욕망 이였습니다. 그 욕심이 엄마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나 엄마로써 거기 계셨습니다. 그 분이 변한 것은 아직도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지만, 엄마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지식이 넘치는 사람은 사회에 넘쳐 나지만 엄마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돈으로, 지식으로 엄마를 대신하려는 내 욕심이 내 눈을 가려 오직 한분,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신 내 어머니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가진 질문에 특별히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의 건강과 나의 마음을 살피시고 염려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내가 한 자락이나마 느낄 수 있을까요? 내가 그 분이 아니고서야 느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 나는 것은 내가 그 분 앞에서 즐거워하며, 그 분으로 인해 기뻐할 때, 그 분도 기뻐하시고 웃으셨습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여는 순간, 나를 반기며 나로 인해 기뻐해 주는 아이들의 맑은 표정을 보는 순간입니다. 나로 인해 기뻐해 주는 아이들은 내게 더 이상 아무것도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나를 인해 즐거워 해 주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나와 함께 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가만히 생각 해 보면, 다른 어떤 것도 그 순간, 내가 느끼는 행복보다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질문에 답을 해 줄 것 같은 것들은 세상에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나에게 생명 주신 그 분은, 그 모든 일은 직접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어쩌면 우리의 요구에 응답 해 주시기 보다, 그 분의 요구에 우리가 응답하기를 원하시기 보다, 우리가 그분을 느끼고, 그 분을 인정하고, 그 분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을 통해 참으로 즐거워 하시기를 원하실 것 같습니다. 자식이 고통 받는 모습보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시려고, 당신 스스로 자식들의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마음을 그저 단순히 누리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20/2004 정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