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세월을 초월한 아내 사랑2004-07-25 20:25:58
Writer
세월을 초월한 아내 사랑 (에베소서 5:22-30) 2004년 5월 9일 장세규 목사 22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 :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 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 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아멘- 얼마전 제 아내가 밖에 볼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아내가 조금 늦게 들어오는 날이었기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들어올 것 같아서 제가 밥을 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못한다고 해도 밥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밥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4인분의 쌀을 쌀통에서 받았습니다. 요즘 나오는 밥솥들은 얼마나 잘 만들어져있습니까! 그래서 쌀을 씻어 넣어놓으면 자동으로 시간이 되면 밥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8시에 들어올 테니까 7시면 밥이 되도록 시간도 맞춰놓고, 프로그램도 해놓고, 쌀을 넣고 스위치를 눌러 놨습니다. 그러면 밥이 7시가 되면 밥이 되겠지 하고는 저는 2층의 제 방에 올라갔습니다. '8시쯤 되어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때 새로 만들어진 구수한 밥 냄새가 집에 가득하고 내 아내가 감격하겠지!' 하면서 2층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시간이 잠깐 지났는데 들려야 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아래층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부르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Something is wrong. 무엇인가 잘못됐나보다 하고는 긴장하고 내려가 봤습니다. 가서 봤더니 할건 모두 했는데 쌀을 씻고 물을 붓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밥솥은 7시에 제대로 켜진 채로 한시간 동안 가열은 됐는데 밥솥을 열어 보니까 밥이 구운 건지, 볶은 건지, 데친 건지, 하여튼 이상한 밥이 되어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세월이 흘러서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밥하는 방식은 변합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그래도 아내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줘야지 하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입니다. 옛날 사람이라고 남자들이 이상하게 살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한국에서 여러 오래된 문중의 글들, 문집들을 수집해서 박물관을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몇 백년 전에 쓴 선비들의 집안에서 보존해온 글들 중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고, 아내를 위해서 어떻게 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것은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특별히 아내를 위해서 '참으로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인가를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내들이 제일 많이 힘들고, 고생하고,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면서 밥을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동서고금에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남자들이 그것을 못 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어도 못 했을 것 같습니다. 첫 째는 남자가 어디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하냐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서 못했을 텐데 그런 의식을 다 피한다고 해도 막상 밥을 하려고 덤벼들면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즘하고 달리 옛날에는 밥 짓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선 요즘처럼 수도꼭지 틀면 물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밥을 하려고 하면 물을 우물가에 가서 길어와야 합니다. 옛날에는 대갓집이나 마당에 우물이 있었고 일반 서민들은 모두 동네 한복판에 있는 우물에 가서 물을 머리에 이고 오든, 지게에 지고 오든 길어와야 합니다. 또 밥을 하기 위해서는 물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지금처럼 가스를 켜면 가스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옛날에는 장작을 준비해서 아궁이에 넣고 불을 펴야합니다. 안에 있는 화로에서 불씨 담아다가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쌀도 지금처럼 자루에 담긴 것을 부어 가지고 한번 헹구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쌀을 북북 씻고 조리질을 몇 번씩 해서는 조그마한 돌멩이까지 다 걸러내는 일을 기술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밥을 앉히면 다음에는 불을 조절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자동으로 밥솥이 다 해주지만 밥이 다 되면 그 다음에 뜸 들이는 것, 이것도 수년의 경험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해도 막상 덤벼들어 할 수 있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밥하는 절차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밥해주었다는 말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들어가는 품은 별 것 아닙니다. 1분이면 일이 끝납니다. 우리 아내는 쌀을 꼭 씻어서 넣어야 된다고 하는데 씻을 필요 있습니까! 그냥 넣으면 1분이면 끝납니다. 얼마나 편하게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밥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정신이 없어 실수하는 인간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어머니날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이기 전에 아내요, 아버지이기 전에 남편이요, 아이들이 생기기 전에 이미 아내요, 아이들이 이 땅에 오기 전에 이미 남편인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로 대하기 이전에 한 남편으로, 한 아내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저는 너무 너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배워야 될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가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변해도 또 아무리 사회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원리들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나오는 아내와 남편에 관하여 나오는 아주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교훈과 의미들이 담겨있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으로부터 수많은 교훈들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특별히 오늘 저는 오늘의 시대에 함께 적용하기를 원하는 세 가지 변함없는 원리들을 오늘 본문에서 함께 찾아서 우리가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변함없는 교훈,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교훈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무리 뛰어도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처럼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온전하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우리는 결코 예수님 같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2절부터 24절까지는 아내들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이렇게 하라고 주시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시며 23절에는 '이는'하시면서 복종해야 될 이유를 설명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니라' 그리고 24절에서는 했던 말씀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3절에 걸쳐서 사실은 2절의 내용에 걸쳐서 아내가 남편에게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에게 할 일은 25절부터 30절까지 나옵니다. 6구절에 걸쳐서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거기에 비해서 아내에게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적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렇게 하셨던 가능성 있는 이유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는 명령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짧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이유라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아내들이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면 눈 끝이 올라갑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짧은 것은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해 차원이 아니라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일 경우에는 설명을 짧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쉽게 됩니까? 하고 싶지도 않지만 한다고 해서 쉽게 됩니까? 그렇다면 마지막 한가지 남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게 이야기한들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꼭 이와 같은 심정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글을 쓴 것이기는 하지만 글을 쓴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들을 잔뜩 앉혀 놓고 설교하다가 -옛날에는 한쪽은 남자, 또 다른 편은 여자로 나뉘어 앉았었습니다- 여자들한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십시오'라고 말씀하면서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습니다. 그가 친히 몸의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을 하고는 여자 쪽의 얼굴들을 보니까 약간 찡그려있자 '아유! 더 말하면 안되겠다'하고는 'Never mind!'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의미가 '그러나'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하여튼 복종하시오'하고는 다음 말씀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제가 왜 이것을 길게 지적하느냐하면 우리가 한가지 인정해야 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내로서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명령을 즐겨 순종하려는 마음을 찾기도 어렵고, 그것을 즐겨 순종하게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는 주의 명령을 쉽게 이해도 안될 뿐만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 결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도 어렵고, 복종하는 것도 어렵고, 그리고 사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정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명령대로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존재들입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예수님이 교회에게 해 준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예수님과 같아야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가 주께 복종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지만 복종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떠나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와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하면서 첫 번째로 변함없는 진리를 찾아야 될 것은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내가 할 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조차도 내가 아직 순종하지도 않고 내가 그것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을 하고, 어떻게 행동에 옮기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다음에 '당신은 뭐해?'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 좋은 곳을 예약해서 멋진 곳에 가서 식사한다는데 당신은 예약도 하지 않고 뭐하고 있어?'와 같은 말씀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하지 못했으니까! 한국에서 잉꼬 부부라고 소문난 사람 중에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저도 인터넷에 들어가 어떤 사람들인지 열심히 뒤져봤습니다. 여성잡지에 두사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수종이라고 하는 그 사람은 하루에도 몇 십번씩 아내에게 전화해서 '사랑해! 괜찮아! 무슨 일없어? 당신 보고 싶어'라고 말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했던 시절에 혼자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이 그냥 버릇이 되어서 걸핏하면 아내한테 기가 막힌 요리 만들어서 바치고, 남들 다 보도록 티내게 이상한 이벤트 같은 것을 하는 것들이 여성동아, 여성조선 등 잡지에 많이 나왔습니다. 여자들이 잡지 기사를 보고 최수종한테 감격해 가지고 자기 남편에게 '당신도 나한테 이렇게 해봐!'하는 바람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수종씨는 이렇게 해주었다는데 당신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최수종씨는 이런 일도 해줬다는데 당신은 뭐하고 있어?'라고 불평할 때마다 남편들이 하는 말이 '네가 하희라냐!'라고 한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최수종도 아니고 하희라도 아닙니다. '최수종이나 하희라처럼 해라'가 아니고 '예수님처럼 해라. 영광스러운 교회! 빛나는 흠 없는 교회처럼 해라'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인데 그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을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가 고백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최수종, 하희라 수준도 안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수준이 안됩니다. 그래서 '나는 남편으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다는데 당신은 도대체 하는 일이 뭐가 있어?'라는 소리를 일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부터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변함없는 원리, 두 번째, 세 번째 원리는 남편들한테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두 9절인데 앞의 3절이 아내에게 주는 말씀이고, 뒤의 6줄이 남편에게 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비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원리는 남편들에게 주는 말입니다. 변함없는 또 한가지 원리는 남편들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열매, 가장 위대한 성취, 가장 위대한 보람, 가장 위대한 만족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복되게 하고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니 남자 분들의 얼굴 색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만 은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남편들이 아내 사랑하는 것을 어디에 기준을 두었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에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25절부터 30절까지 예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셨는지를 구체적인 행동을 설명을 해주십니다. 첫 번째는 '위해서 자신을 주심같이' 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말씀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 다음 26절에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사', 십자가로 마련된 구원의 길을 통해서 사람들을 건지시고 구원하셔서 그냥 한사람, 한사람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티나 주름 잡힌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계속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살피는 것처럼 미워하지 않고, 양육하며, 보호하며, 교회를 보양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바울 사도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가 이루실 수 있는 수많은 영광스러운 사역 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그가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것, 그가 가장 위대한 성취로 생각하시는 것, 그가 가장 큰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린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교회를 건지시고, 세우시고, 교회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드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본체로서 창조를 감당하셨습니다.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진리의 근원이 되셔서 지금도 창조하신 세계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구원의 역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시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모든 창조주로서, 진리의 근본으로서 하시는 예수님의 수많은 신비로운 사역, 영광스러운 사역 중에서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하이라이트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기를 명령하시면서 주님이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하라는 의미 속에는 '남편들이여 당신들의 인생 속에서 여러 가지 가치 있고 보람있는 자신의 인생을 투자할만한 일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가장 위대한 성취, 가장 위대한 열매, 가장 위대한 보람, 가장 위대한 만족을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잡으십시오'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셔서 30년 동안 평범하고 성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간적인 삶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부모에게 충성하고, 형제들을 돌보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을 책임지는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3년 동안 공생애를 통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귀신을 굴복시키시고, 악령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그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치료해주시고, 천국의 말씀, 천국의 복음을 선포해주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그를 위해서 죽겠다고 헌신하는 수많은 무리들을 만들어내는 이 땅에 걸었던 어떤 인간보다도 더 위대한 일들을 3년 동안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역에 있어서 하이라이트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33년의 삶에 있어서 하이라이트는 바로 오늘 25절에서 나오는 대로 '위하여 자신을 주심'이라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생명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33년의 삶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빛나는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보람이요,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만족과 가장 위대한 성취와 가장 위대한 보람과 가장 위대한 열매는 아내를 사랑하여 얻는 결과여야 합니다. 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지 아십니까? 성경은 이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자면 바울 사도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에게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여기 싱글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한테 바울사도는 결혼 안한 상태로 있는 것이 좋다고 권했습니다. 그 이유를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생기면 아내를 기쁘게 해야 되는 의무가 생깁니다. 그러나 아내를 기쁘게 하다가 보면 결혼하기 전, 아내가 없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던 것만큼 다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생기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의 일부를 잘라서 아내를 기쁘게 하는데 써야된다. 웬만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려면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혼한 사람들은 이제 끝장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아내 없이 살겠다면 혹시 모르지만 결혼해서 남편으로 살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일부를 잘라서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에 쓰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100% 기쁘시게 해드리고, 아내를 100% 기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일부를 뽑아서 아내를 기쁘게 하는 데에 써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면 애초에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한테 올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의 일부를 잘라서 아내를 위해서 쓰는 것에 대해서 야단치지 않으십니다. 또 그렇게 해야 남편의 본분을 다한 것으로 성경은 간주합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원리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글이 쓰여지고 나서 인류 역사 2000년 동안에 아내의 위치가 어땠습니까? 남편들이 과연 아내를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하고, 얼마만큼 아내를 위해서 살았습니까? 여성들의 인권이, 여성들의 지위가, 여성들의 권리가 지금 그나마 이 정도가 되어 남편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남편에게 할말 다하면서 살게 된 것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지난 2천년의 역사 속에서 대부분 그런 것은 꿈도 못 꿨습니다. 남자들은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내를 희생하고, 자식들을 희생하면서 이 세상에 나가 출세해서 세상 사람들한테 칭송 받는, 사람들한테 눈에 띄는 인정받는 명분, 인정받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을 위해서 생명 바쳐서 일하는 것이 남성의 본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그 역사의 현장을 다 무시해 버리고 성경은 주님께서는 남편들에게 '너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네 아내를 사랑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여건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몰려갈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시대의 변화와 세월의 변화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이 남편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열매요 가장 위대한 성취요 가장 위대한 보람이요 가장 위대한 만족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되느냐하는 것이 세 번째 원리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기쁘게 하는데 있어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뭐냐하면 아내가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장 온전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크게 세 가지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뜻합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사이의 관계로 말하자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어느 날 어떤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어서 프로포즈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이 뜻은 '나를 너에게 주겠다'라는 것이며 '이제는 내 인생에서 여자는 당신 밖에 없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자신의 몸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을 얻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후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을 모아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예수님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을 약속하고 그리고 그 약속에 충실하여 드디어 결혼해서 부부의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대부분 남편들의 문제는 거기까지 하고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당신하고 결혼해줬으면 됐지!'하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데 그 다음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냐하면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는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번 영광스러운 교회라고 세워놓고 그 다음에는 내버려두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다음에 세워진 교회가 세상의 역량으로, 세상의 고통으로,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흠이 생깁니다. 티가 생깁니다. 주름잡히는 일이 생깁니다. 지칩니다. 약해집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흠집난 것을 고쳐주시고 티가 생긴 것을 닦아주시고, 거기에 누추한 것을 없애주시고, 주름진 것 다 펴주어서 예수님께서 처음에 세워주었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먹여주시고, 보양해주시고, 양육해 주시면서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문제는 우리 주님에게 어울리는 몸으로서, 영광스러운 교회로서, 빛나는 교회로서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너희들이 나중에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세상에서 주님에게 어울리는 아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더욱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매일 티가 생기고, 흠집생기고, 주름지고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지금도 하시는 일은 흠난 것 없애주시고, 티 생긴 것 닦아주시고, 주름진 것 다시 펴주셔서 다시 능력의 교회, 빛나는 교회, 영광스러운 교회로 회복되도록 주님께서 지금도 계속 일하시는 것입니다. 똑 같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는가! 주님께서 내 아내를 처음 지으시고 내 아내를 처음 구원하셨을 때에 주님께서 그 마음에 품고 계시는 내 아내의 가장 온전하고, 가장 완성된 모습이 회복되어 발휘될 수 있도록 보양해주고, 양육해주고, 티 생긴 것을 없애주고, 흠난 것을 깎아주고, 주름진 것을 펴주어서 다시 빛나고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존재로 회복시켜주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냐하면 아이들 키우느라 지난 몇 년 동안 고생하며 모든 것을 다 접어놓았습니다. 이제는 하고싶은 일을 하라고 하십시오. 그 동안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용기도 없어지고, 희망도 없어지고, 소싯적의 꿈도 없어지고, 주름진 것 펴주고, 흠난 것 없애주고, 티 생긴 것 닦아주고, 다시 보양하고 양육해서 원래 주님께서 허락하셨던 빛나는 모습으로 회복시켜주십시오. 격려해 주시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해보라고 하십시오. 그런다고 아내들이여! 또 '내 세상이다'하며 너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마십시오. 격려해 주십시오. '나는 못해!'하면 억지로 한번 해 보라고 격려해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아내이면서 어머니이면서도 또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교회와 같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하나님이 기대하실만한 그런 놀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꽃피게 해주십시오. 지난 2천년 동안 인류역사를 통해서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무슨 일을 하고 살았습니까? 어떤 피해를 보고 살았습니까? 어떤 고통을 받고 살았습니까? 과연 여성들이 사회에서 정말 남자들 못지 않게 아니 남자들보다 더 괜찮은 역할을 하면서 영광스럽고 빛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을 그대로 발휘하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거의 그런 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그것을 염두에 두시고 남편들한테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시대하고 무관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던지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시대를 무시하고, 세월을 무시하고, 사회를 무시하고, 환경과 분위기를 무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될 의무입니다. 아내들을 온전케 해주십시오. 최근에 한국에서 괜히 유명해진 최수종 하희라와 같은 사람들 말고 정말 실속 있게, 정말 자기의 꿈을 이루고, 자기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한동안 뒤져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어디에서 글을 하나 읽었는데 아주 희한한 분을 한분 찾았습니다. 산악인 한 왕용, 38살 된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입니다. 이분은 작년에 37살 때까지 지구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 넘는 14개봉을 모두 등반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14좌 완등 기록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헌신해서, 얼마나 집요하게 그 일을 했겠습니까! 우리 한국민족이 조금 독특한 것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도 몇 명 꼽지도 못할 정도의 이런 업적을 이룬 이 한 왕용이라는 분이 한국에서는 첫 번째가 아닙니다. 세 번째입니다. 그의 앞서서 엄 홍길, 또 박 용석이라는 산악인이 이미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이루었었습니다. 하여튼 한국 사람들은 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잘 합니다. 그래서 그의 앞에 이미 그 14좌 완등을 이룬 엄 홍길, 박 용석과 같은 분들이 계시지만 이 한 왕용이라는 분은 조금 독특합니다. 앞의 첫 번째, 두 번째로 14좌를 완등하신 분들은 지금도 등산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은 올라갈 산이 없다보니 남미의 제일 높은 산, 북미의 제일 높은 산, 북미의 몇 천미터 이상 되는 것들을 올라 다니다가 이제 산이 없으니까 그 다음에는 걸어서 남극점 가기 같은 것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밖에 나가서 등산하고, 탐험하고, 모험하는 일을 하여튼 죽기 살기로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14좌 완등을 마친 이 한 왕용씨라는 분은 더이상 등산을 하지 않습니다. 등산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분한테 아니 전세계에서 몇 명 없는 그런 큰 업적을 이룬 분인데 그쪽으로 커리어를 정해서 그쪽으로 계속해서 해서 하셔야지 왜 등산을 중단하셨냐고 물어봤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14좌 완등은 제가 좋아서 했고, 스스로에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줬으니까 내가 몇 번째로 했던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 속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계속하려면 결혼은 왜 했고, 아이는 왜 낳았습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잊혀진 산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주 멋있는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면서 등산하는데 있어서 어떤 환희가 있었고, 어떤 즐거움이 있었는가를 얘기하면서 자기는 한번 더 산은 올라갈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금년 안에 K2봉을 한번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등반은 산을 정복하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언젠가 K2봉 8611미터를 올라가는 길에 한국 등반대원들이 버린 쓰레기를 너무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한국산 깻잎, 마늘 장아찌 통조림, 꽁치 통조림 같은 것들이 너무 많이 널려있어 그것이 수치스러워 청소하려고 한번만 더 산을 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산을 타면서 겪었던 위험들, 거기서 깨달았던 인생의 진리들, 거기서 느꼈던 환희들, 거기서 이루었던 성취감들, 이러한 것들을 기자하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기자는 그것이 재미있어 계속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리고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해서 기자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장차 어떻게 사실 작정이십니까?'라고 물어보자 이분이 '앞으로는 아내에게 내 인생을 투자하려고 합니다. 아내는 노인 복지 시설을 하려고 요즘 공부중입니다. 섬진강변에 복지시설을 지을 장소도 보아 두었습니다. 거기에서 아내의 일을 도우면서 보낼 작정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대답입니까! 인터뷰를 끝낸 뒤에 기자가 저녁식사를 제의했답니다. 그러니까 그가 하는 답이 '오늘 집에서 아내가 밥해놓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하면서 밥 먹지 않고 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기자가 이 인터뷰 기사를 다 쓰고 인터뷰 기사의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음을 했습니다. 기자의 말입니다. '오호 삶과 죽음 사이를 걸어온 인물이 어찌 호방하지 아니하고 가족으로 귀착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볼 때, 위대한 일이라고 불러주고, 놀라운 일이라고 불러주고, 인생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불러주는 것에 의미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그것을 위대하고 위대하다고 불러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람있게 성취했던 인생의 보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왜 진정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보람이 되는지 아십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그것을 보람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해야 남자가 철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게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등산 다니셨습니까? 남들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다니셨습니까? 14개의 꼭대기 봉우리를 정복하는 일에 인생을 쓰셨습니까? 앞으로 아내에게 인생을 투자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기쁘게 하십시오.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내를 기쁘게 하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복되게 하는 일과 함께 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삶이 남을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드릴만한 열매들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훨씬 더 성숙한 남성의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아내가 밥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아내가 밥하는 날이 아닙니다. '아차!' 하시고 오늘 나가는 길에 식당에 들르려고 하시면 Too late! 이 지역의 모든 식당은 다 예약이 완료되어있습니다. '미안하다'고 하시고 가다가 주문이라도 하나해서 테이블이라도 세팅해 놓으시고 오늘만이라도 서브하십시오.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밥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돌아가서 삶과 죽음의 거창한 이야기를 떠들지 마시고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복되게 하며 아내로부터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성경 적인 남편, 성경 적인 남성상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본 자료는 미국 버지니아 한빛 지구촌 교회(Rt.7 캠퍼스) 장세규 목사님의 3부 예배 설교 내용을 동교회 테입 사역부에서 기록 편집한 것으로 실제말씀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기록 : 안수현, 이난정, 주효순 편집: 김선영 문의: lgmc200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