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살기위해 예수의 생명을 훔쳐라2007-10-26 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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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성경일독반을 듣고 있습니다. 매일 20장씩 성경을 일고, 매주 report를 써내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성경을 재 배치에서 읽어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하루에 20장이 부담이 되고, 때로는 눈으로만 읽어 내려가지만 재미있는 과정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니까 (특히 구약), 하나님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picky하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반응하셨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고, 어찌 생명을 그렇게 죽이시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죄에 대해서 너무 관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picky 것이 아니고 내가 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죄를 싫어 하시고,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는 하나님. 생각에는 그냥 넘어갈 만한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께서는 작은 하나라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책임을 물으신다고 하십니다. 책임은 바로 죽음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내가 지은 죄들이 다시 내 속에서 살아나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곧 죽을 것 같다는 불안함,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 것 같은 공포가 생겼습니다. 그 무서운 하나님을 피하고 싶은데, 곳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곳을 주님이 창조하셨는데, 내가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그래서 속에 지혜가 생깁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것은 피하지 않고 자리 엎드리어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죄의 책임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흘려 죽지 않으면 죄가 없어지지 않는데, 어찌 내가 살기 위해 용서를 구할 있겠습니까? 때문에 나는 죽을 밖에 없습니다. 내가 피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국 나를 찾아 내시어 심판하실 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양처럼, 사지를 동강내어 하나님 제단 앞에서 살라 모두 없어져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사글어 것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죽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이상, 하나님이 죄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으시느데, 어찌 죄가 관영한 내가 살아날 구멍이 있겠습니까? No Way Out 입니다. 사면초가이고 완전히 독안에 든 쥐입니다.

두려움으로 엎드려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를 위해 피를 흘려라, 죄를 용서하기 위해 생명을 바쳐라

주님, 제가 죽으면 어찌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자가 어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노래하며, 그 높은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피로 제사를 지내라. 성전에 예수의 피를 들고 들어와 지성소에서 예수의 피를 뿌려라. 너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후에 예수의 피를 뿌려라. 없고, 순전한 젊은이, 예수의 생명을 내게 바쳐라, 피가 지성소에 뿌려지고, 생명이 지성소에 뿌려질 때에 내가 피값으로, 생명 값으로 너의 죄를 용서하리라.

 

 

그래서, 저는 속에 있는 음란한 죄와, 믿지 않는 죄와, 거역하는 죄를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는 물론이고 주님을 알고 나서 지은 너무 비참한 죄들을 뭉뚱그려 고백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쫒았던 죄를 고백하고, 육체를 만족시키려는 욕망을 접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인생이 사용되어 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뿌렸습니다. 주님의 성전에 주님의 피를 뿌렸습니다. 피를 뿌리면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이 내가 받을 고통이고, 십자가에서 당한 멸시와 수모가 내가 받아야 수치였고, 십자가에서 없어진 젊은 예수님의 생명은 내가 오늘 죽어야 목숨입니다. 옆구리에 창을 맞고 쏟아 내신 피를 내가 받아, 젊은 예수의 피를 주님의 지성소에 뿌렸습니다.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뻔뻔하게 예수님의 피를 뿌렸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분의 생명을 내가 써야 합니다. 내가 용서 받기 위해 분이 죽어야만 합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게 무슨 바르지 못한 입니까? 죄를 지은 자가 죽는 것이 마땅한데, 지은 자가 살기 위해 남의 피를 뿌리다니요!!!

 

 

그래도 그렇게 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고 싶고, 죽기 싫기 때문입니다. 감고 살기위해 예수님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소망합니다. 속에 내가 이길 없는 죄악들도 성령의 불길로 모두 태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다시는 예수님의 생명을 생명으로 대신 하는 끔찍한 일이 없게 하기를 소망했습니다그리고, 다시 소망합니다. 내가 받은 생명이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사용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제 속에 확실히 들어오는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고상한 철학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보기 좋게 포장한 친절, 있음, 사랑, 안락, 평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내가 살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처절한 문제입니다. 믿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고픈 사람이 남의 빵을 훔쳐 먹고 있다면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훔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죽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의 생명을 훔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살아날 있는 기회를 어떻게 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살아났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니까, 머리속에 뚜렷이 떠오르는 것은 이제 죽지 않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을 따라야만 있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네요. 형제들의 모략으로 애굽에 팔려간 요셉을 그 형제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데 오히려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뒤집어 씌우고 죽게 한 젊은 예수의 생명을 누명을 씌운 그 죄인들을 살리려고 먼저 십자가에 보내신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