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과 자료

믿음의 글/자료 게시판은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대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게시판입니다. 특히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지 그 표적인 부활의 역사적 증거 자료와 함께 흔들릴 수 없는 부활신앙에 서도록 격려하고 북돋우는 도움의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많은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Title물위를 걷다2006-02-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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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묵상말씀에 너무나 많이 들어 온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예수님께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하다 바닷속에 빠져 버린 베드로"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만 늘 눈에 들어왔었는데, 그 날 따라 묵상중에 29절 말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라는 구절에 마음이 갔다. 잠시이지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나 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물 위를 걸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세요"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 언젠가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 내게도 물 위를 걷는 역사가 일어났다.^^ 
다음 날,그러니까 목요일 오전에 지도교수님과의 meeting이 있어서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였다.
묵상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논문과 관련해서 지도교수님에게 보고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준비를 아침부터 해야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면서 스스로 타협을 했다.  시간에 쫓기어서 묵상을 하면 무엇하겠느냐. 일단 오전에 지도교수님 먼저 만나고 오후에 시간을 넉넉히 들여서, 마음을 모아서 묵상을 하자.
그래야 묵상을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나님도 다급히 대충하는 묵상은 분명 기뻐하지 않으실 거야.  타협할 명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이제는 30-40분을 당일 아침에 더 준비한다고 해서 지도교수님과의 meeting이 더 잘 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돈이 혹은 명예가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라는 사실까지는 알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내 능력이 미치지 않는 그 무언가들이 인생 가운데 도처에 깔려 있다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실들을 이제는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 30-40분을 아침에 더 써서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을 준비하려고 하는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사단의 속임수"가 이런 것인가 보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베드로처럼 나도 잠시나마 물 위를 걷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날 아침 이미 마음에 타협을 다 끝내놓고도, 지도교수님 만나기 전 그 "귀한" 40분을 말씀묵상하는 시간으로 사용한 것이다. 
늘 알면서도 바쁜 일 중요한 일 먼저 해 놓고, 묵상은 나중으로 미룬적이 많았는데, 그 날은 바쁜 중에도 집중하는 마음까지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묵상을 먼저 하게 되었고 말씀 가운데 은혜도 받고 새로운 깨달음도 주셨다.

그리고 나서 지도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이 급한 약속이 생겼다고 하면서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다.^^
또 한 번 세상에 져서 말씀은 뒤로 하고 정신없이 교수님 만날 준비만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던 내 자신을 떠올리며 그저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사소한 얘기가 아니냐, 이게 무슨 물 위를 걸은 역사냐 사람들이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많은 경우 세상에 패배하던 나로서는 그 40분을 말씀묵상하는데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마치 베드로가 물 위를 잠시 걸었던 그 사건만큼이나 큰 사건이 되었다. 결국 말씀묵상을 통해 주님 먼저 만났고 지도교수님도 만났다.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안 것은 묵상을 통해 주님을 먼저 만났기 때문일거다.
그렇지 않았으면, 기껏 준비했는데, 약속이 생겼다고 가 버리신 지도교수님만 야속해 했을 것이고, 경험으로 보아 그 오후시간에 말씀묵상을 했으리란 보장도 사실 없다.
믿음이 적은 나에게 물 위를 걸은 것에 비길만큼의 기쁨을, 작지만 큰 일을 통해, 주님이 주셨다. 할렐루야.